[노동이사] 침묵 속의 상법 개정, 노동이사제는 어디로?-박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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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사] 침묵 속의 상법 개정, 노동이사제는 어디로?-박태주

윤효원 112 09:49

    

[노동이사] 침묵 속의 상법 개정, 노동이사제는 어디로?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상법 개정안이 지난 7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 합의로 처리된 이재명 정부 첫 민생법안이라는 자평에 이어 ‘자본시장 선진화를 향한 한 걸음’이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하지만 상법 개정이 노동이사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노동이사협의회 역시 남의 일처럼 무덤덤했고.    


상법 개정의 취지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한편,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배주주의 과도한 권한 행사를 제한했다. 이사는 지배주주가 아닌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정하게 반영하도록 했으며 사외이사의 명칭도 독립이사로 바꾸었다. 독립이사의 선임비율을 4분의 1에서 3분의 1로 늘렸고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회사는 전자주주총회를 반드시 개최하도록 했다.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의결권은 최대 3%로 묶였다.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된 충실의무, 노동이사제와 충돌


이번 상법 개정에서 핵심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개정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이사는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명시했다(아래 표 참조). 


이글에서는 확대된 이사의 충실의무가 노동이사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한 상법 조항은 공공기관의 이사에 관해서도 ‘준용’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제35조 ①항)에 따르면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의 규정은 공기업ㆍ준정부기관의 이사에 관하여 각각 이를 준용한다”. 공공기관의 노동이사 역시 “회사와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주주인가, 이해관계자인가? 


공공기관의 노동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면 곧바로 “노동이사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넓힌 것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취지나 공공서비스의 증진이라는 공공기관의 운영취지에 맞는지도 의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다시 “회사란 무엇인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 특히 ESG의 흐름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는 대안을 모색한다. 


자본주의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더는 새로운 주장도 아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도 변화하고 있다. 그 중에는 노동자가 경영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주식회사라면 원래 주인이 없는 기업이므로 얼마든지 노동자들 또는 종업원들이 경영권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스스로 사장을 선출할 수 있다”(김상봉, 2012,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물론 많은 연구자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기업을 주주가 소유하는 사적 영토로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을 이해관계자로 이뤄진 생산공동체이자 이익공동체로 바라보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다. 이해관계자에는 주주 외에도 노동자, 지역사회, 공급망 회사들, 소비자를 포함된다. 기업은 이익을 많이 내는 게 능사가 아니라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존중하는 상생과 공존의 경영을 보여야 한다는 관점을 반영한다.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경영으로: 세계적 흐름


기업이 이해관계자와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건 2019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 Table, BRT)에 모인 미국의 200대 기업 최고 경영자들이 서명한 선언에서도 확인된다. “기업의 목적은 더 이상 주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객, 직원, 납품업체, 커뮤니티 등 모든 이해당사자의 번영을 추구하는 데 있다”. 


이를 이어받아 2019년 영국학술원은 ‘목적 있는 비즈니스 원칙’을 발표하면서 (민간) 기업을 ‘공공의 이익’이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파악한다. “기업이 중요한 공적 기능을 수행할 때 기업의 이사들이 공공의 이익에 대한 높은 수준의 참여와 충성도 그리고 관심을 보이도록 규제할 필요가 있다”. 



ESG 시대의 노동이사에게 주주 충실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가?


한국 경영계도 2022년 5월, ‘신기업가 정신 선포식’을 갖는다. “이윤 창출이라는 과거의 기업 역할을 넘어서 직원과 주주, 협력회사,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 함께 발전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며 기업가정신협의회(ERT)를 출범시켰다. 


이런 점에서 이번 상법 개정은 시대에 뒤쳐진 주주자본주의를 다시 불러오려는 시도가 아닌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의미하는 ESG 개념은 이미 기업 가치 평가의 기준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국내 10대 그룹 중 8곳이 ESG 위원회를 설치해 글로벌 흐름에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사의 역할을 회사와 주주의 이해에 충실해야 한다고 규정한다면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은 무시해도 괜찮은지를 물을 수 있다. 민간 기업조차도 사회적 책임과 공공의 이익 실현을 요구받는 시대다. 이런 흐름을 거슬러 공동체의 자산인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에게 주주 사무를 담당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공공기관 본연의 역할을 훼손할 뿐 아니라 노동이사제라는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다. 

 


노동이사는 누구를 대표하는가?


노동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면 그것이 노동이사의 정체성에 부합할까. 다른 이사들이 하나같이 정부나 주주의 이해를 대변하는 상황에서 노동이사까지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면 노동이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나아가 회사의 이해와 주주의 이해가 충돌하면 노동이사는 어느 편을 들어야 할까. 이러한 질문은 노동이사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노동이사는 ‘해당 회사에 소속된 근로자’의 신분을 가지면서 ‘이사회에 부의된 안건을 심의하고 의결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이사회에 참석하거나 준비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일반 직원과 마찬가지로 상급자의 지시를 받으며 업무에 종사한다. 따라서 노동이사는 비록 경영의 의사결정에 참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유지한다. 그렇다면 노동자 대표인 노동이사에게 주주의 이익을 위해 직무를 수행하라고 강제하는 게 정당한 일일까.  



공공성 vs. 주주이익 충돌 시 노동이사의 선택은?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만일 회사의 이해와 주주의 이해가 충돌한다면 노동이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공공기관에서 노동이사가 공공성을 내세워 주주 이익을 침해한다면 그것은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될까. 예를 들어 한국전력이 취약계층의 에너지 복지를 위해 전력요금을 감면하거나 무상으로 바우처를 제공할 경우 노동이사는 주주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반대해야 하는가.

   

상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대법원의 판례는 분명했다. 대법원은 “이사는 주식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지, 주주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니며,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담할 뿐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2004. 5. 13. 선고: 대법원 2002도 7340). 


2009년에는 더욱 강화된 판례를 제시한다. “주주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회사에게 손해가 된다면 이러한 손해를 방지할 의무가 이사에게 부과되는 것이고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 또는 배임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대법원 2009.5.29. 2007도4949). 



공공기관 노동이사의 임무는 공공성 실현이다


원칙적으로 노동이사는 주주를 위해 일하도록 위촉된 인물이 아니다. 노동이사는 노동자에 의해 선출되거나 노동조합의 추천을 받은 노동자로서 이사회에서 노동자를 대표한다. 그리고 “공공기관은 경영을 합리화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대국민 서비스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공운법 제1조). 


그렇다면 노동이사의 역할은 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공공기관의 설립 취지와 노동이사제 도입 목적에 부합한다. 물론 공공성 개념이 노동자의 렌즈로 해석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공공기관 가운데는 상장기관도 존재한다.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강원랜드,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그랜드코리아레저(GKL) 등 7개 기관이 그들이다. 개정된 주주의 충실의무가 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된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에게 적용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상장 공공기관은 일반 공공기관 이상으로 시장평가를 중시하며 수익성에 대한 압박도 직접적이다. 개정 상법은 아예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함으로써 주주가치 제고를 이사의 직무로 못박고 있다.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형법상 배임죄 및 특별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  



비상장 기관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그렇다면 개정된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가 없는 비상장 공공기관 노동이사의 직무수행과는 무관할까. 먼저 확인할 사항은 상장기관의 노동이사와 비상장기관의 노동이사가 역할 측면에서 구분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선임절차나 임기, 권한에서도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 상장 공공기관에서 비롯된 수익성 중심의 경영이 공공기관 전반으로 확산되면 노동이사의 입지는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앞서 밝혔듯이 공공기관의 이사에게는 상법상의 이사충실의무가 ‘준용’된다. 그렇다면 노동이사도 “회사외 주주를 위해”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도 ‘준용’되는 셈이다. 주주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수익성이나 효율성과 같은 ‘주주 가치 제고’가 직무수행의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비상장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에서 수익성은 지금도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2024년 기준, 재무성과 항목의 배점은 20점에 이른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공공기관에서 주주 가치 제고가 강조되면서 노동이사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가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상장 공공기관이 주주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비상장 공공기관이 공익우선주의를 고집할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이번 상법의 개정은 자칫 이해관계자주의와 공익우선주의에 기반을 둔 노동이사제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법적 근거 없이 위태로운 노동이사제


노동이사제의 관점에서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상법과 노동이사제를 명확히 분리하는 것이다. 이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한 상법 조항을 공공기관에서도 준용하도록 한 공운법 조항을 삭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공공기관 노동이사에게 상법의 이사충실의무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노동이사의 정체성이나 존재 이유가 자동으로 정립된다는 것은 아니다. 노동이사의 정체성이나 존재 이유를 규정한 법적인 근거가 현재 공운법이나 지방자치단체 조례 어디에도 명확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동이사제는 상법 개정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2016년 서울시에 처음 도입되고 2022년에는 중앙공공기관으로 확산됐지만 여전히 법적 근거는 취약하다.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는 해당 지자체의 조례에 근거하고 있으며 중앙공공기관은 공운법에 얹혀있을 뿐이다. 조례끼리 내용을 달리하고 또 조례와 공운법 관련 조항이 달라 노동이사제는 하나의 통일된 제도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독립법 제정으로 통일성과 명확성 확보해야


해법은 중앙과 지방공공기관 노동이사를 아우르는 「(가칭)노동이사제의 도입과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일이다. 중앙과 지방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가 서로 다르게 규정될 이유는 없다. 해당 법에는 노동이사의 선임방식과 수, 임기와 권한, 회사의 행정적 지원, 그리고 노동이사의 조합원 자격 등이 담겨야 한다. 물론 이사를 주주의 사무원으로 격하하는 상법 조항이 공공기관에서 그대로 적용될 이유도 없다. 


국민주권정부를 말하는 시대다. 정책 결정 과정에 국민이 참여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 정책결정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구조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은 노동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를 우선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면 기업의 의사결정에서도 노동자의 이해와 관점이 ‘주권’처럼 반영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국가 통치에서 민주주의가 정당하다면 기업 운영에서도 민주주의는 정당하다(로버트 달, 2011. 『경제민주주의에 관하여』).


출처: 『e노동사회』 202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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