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바란다] 임금체불 대응 범정부기구 설치하라-이종수

e노동사회

[새 정부에 바란다] 임금체불 대응 범정부기구 설치하라-이종수

윤효원 58 05.26 12:53

임금체불 대응 범정부기구 설치하라


이 종 수 공인노무사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객원연구원 



1. 임금체불 대책을 논하기 앞서 생각할 것


임금체불에 대한 글을 쓰면서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의 임금체불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아직까지 임금체불 양상과 원인에 대한 정부 실태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부가 임금체불 문제의 대책을 마련하기에 앞서 정기적인 임금체불 실태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인을 모르면서 정책이나 대책을 논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명절을 앞두고 악성 임금체불 사업주 몇 명 구속하는 식으로 2조원대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미국과 국제노동기구(ILO) 등의 관련 문헌에 따르면, 임금체불은 다양한 양태로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최저임금 위반, 초과수당 미지급, 임금의 불법공제, 특고·프리랜서로 오분류 등으로 임금의 일부 미지급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혹자는 임금체불의 양태가 기업의 파산·도산 등 긴급한 경제적 요인으로 임금 전액이 체불되는게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필자의 경험상 긴급한 경제적 요인으로 임금 전액이 체불되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사실 이 점도 앞으로 임금체불 정기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제대로 밝혀야 한다). 


6.3 대선 이후 새 정부가 출범하면, 임금체불 사전예방 대책을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인을 규명하지 않은 채 구속수사 등 강제수사 중심의 대책은 지금까지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구속 등 처벌도 중요하지만, 임금체불의 원인을 먼저 살피고 원인별 대책을 세밀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2. 임금체불 원인에 대한 이론적 논의


선행연구 등 문헌을 살펴보면, 임금체불이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필자는 여러 문헌을 종합하여 임금체불의 원인을 ⓐ환경적 요인, ⓑ산업구조적 요인, ⓒ법제도적 요인, ⓓ행정적 요인, ⓔ노사관계적 요인 등 5개 유형을 소개한 바 있다(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슈페이퍼 제203호 “임금체불의 원인별 사전예방대책에 관한 소고” 참조).

 

첫째 환경적 요인은 신자유주의 현상으로 국가 규제를 완화하려는 경향이다. 이로 인해 근로감독이 형해화되고 노동조합이 무력화되면서 임금체불이 악화되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둘째 산업구조적 요인은 D.Weil이 강조하는 균열일터(fissured workplace) 의문제로 비정규직의 증가, 아웃소싱의 증가, 다단계 하청구조 고착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 건설업에서 다단계 하청구조가 고착되면서 임금체불이 증가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특고·프리랜서의 증가로 전통적인 임금보호를 받을 수 없는 취약노동계층이 발생하였고, 임금체불 현상이 만연된 상황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실태조사나 대책은 논의되지 않는 상황이다. 


셋째 법제도적 요인으로 노동기준의 명확성을 높이고, 집행을 엄격하게 하여 노동기준 위반의 비용을 높이는 것과 관련된다. 만약 법제도적으로 임금체불에 대한 규제가 느슨하다면 임금체불이 증가하게 된다. 임금체불 사전예방을 위해 법제도적으로 강력한 처벌규정, 징벌적 손해배상, 기타 경제적 불이익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 


넷째 행정적 요인은 사업장 근로감독과 긴밀하게 관련된다. 선행연구는 노동기준을 위반하려는 사업주가 노동기준 위반 또는 준수에 따른 비용을 고려하여 결정한다고 본다. 법제도적으로 처벌비용이 높아도 사업장 감독을 통한 적발 확률이 낮다면, 사업주 위반비용(costs of a violation)을 낮게 준수비용(costs of compliance)을 높게 인식하게 되고, 결국 사업주가 임금체불로 나가는 동기를 부추긴다. 따라서 근로감독 확대(적발확률 증가)를 통해 사업주가 인식하는 위반비용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다섯째 노사관계적 요인은 노조의 쇠퇴로 시민사회가 불법적인 노동관행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된다. 강력한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가 존재하고, 노사가 임금체불 근절을 공동의 목표로 설정하고 활동하며, 피해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신고할 수 있는 산업 내부제도와 분위기를 형성하는게 중요하다.  



 



3. 범정부기구 설치의 필요성


임금체불 대응을 위한 범정부기구 필요성은 임금체불 문제가 심각할 뿐 아니라,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임금체불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부연하면, 임금체불 피해는 해당 노동자로 국한되는 게 아니다. 가정, 산업, 사회와 국가로 그 피해가 이어진다. 


우선, ‘가정’의 경우 가정경제의 피해, 그로 인한 이혼, 자녀들의 학습권 침해, 정신적 스트레스 질병 등 회복되기 어려운 피해를 미치기도 한다. 


둘째, 산업적 측면에서 고의적이고 상습적인 임금체불은 산업내 공정경쟁을 침해하고, 법을 잘 지키는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불법적 기업이 득세하면서 우수인재가 이탈하는 등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게 된다. 임금을 체불하지 않고 기업을 유지할 수 없다면 그런 기업이 사업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와 국가 측면에서 임금체불은 지방노동관서 행정력을 소모시키고, 세금과 사회보험료 미납으로 이어지며, 대지급금 등 지출 증가를 가져오기 때문에 국가에 피해를 주게 된다.     


임금체불에 대응하는 범정부 기구가 필요한 이유는 임금체불 문제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다양한 요인들, 특히 법제도적 문제 및 산업구조적 문제와 연계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과거 임금체불 사전예방을 위해 근로감독의 중요성을 주로 강조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환경적, 산업구조적, 법제도적 측면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할 때 범정부 기구가 아니면 지금의 임금체불 문제(사회적 재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건설업의 경우 건설산업기본법에 다단계 하도급 금지, 하도급대금 직접 지급 조항이 규정되어 있으나,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건설산업의 불공정 계약관행을 개선하려면.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 등 계약 및 재정을 감독하는 주요 부처들의 참여가 필요하게 된다. 


문화체육관광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산업을 총괄하는 부처들은 문화예술인, 정보기술 전문가 등의 고용구조와 직접 관련되는 산업정책을 다루고 있으나, 비정규직화와 특고·프리랜서 등 균열일터(fissured workplace) 문제가 가장 심각한 산업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등은 행정적 요인 측면에서 근로감독 강화, 임금체불 실태조사, 취약계층 임금보호, 사업주 지도활동 등 역할이 필요하다. 공공부문에서 과도한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제어하고 재정수단을 통해 좋은 일자리와 산업구조 조성을 위한 기획재정부의 역할, 체불사업주 처벌강화를 위한 법무부의 역할도 필요하다. 


 

우리는 임금체불액 2조원대 시대를 살고 있다. 신고사건수를 기준으로 보면 2023년 기준으로 185,211건이나 된다. 10개 사업장 중 한 곳에서 매년 임금체불이 발생하고 있으며, 신고되지 않는 사건을 더하면 이보다 심각한게 분명하다. 임금체불은 사용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재난이다. 그런데 정확한 실태조사 한번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우선 노사정 3자가 협력하여 실태조사부터 제대로 하여 임금체불의 구조적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체불에 대한 범정부적 대응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출처: 『e노동사회』 2025년 5월호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