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연대 대통령'이 100일 안에 해야 할 3가지 과제
이주호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전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
6·3 대선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있다. 광장의 요구는 사라지고 성장과 경제 담론만 무성하다. ‘압도적 승리’구호와 지지선언은 넘쳐나지만, 정작 ‘다시 만날 세계’에 대한 비전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이번 대선은 빛의 연대, 광장의 요구를 담아 정권교체를 넘어 민주주의 회복, 87체제 극복, 사회대전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나는 노동운동 30년 동안 몇 차례 대선을 경험하면서 이번 대선이 노동에서 ‘87체제’를 극복할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는 심정으로 이번 대선을 바라보고 있다.
한풀 꺾인 민주노조운동의 양 날개
민주노조운동의 양 날개라 했던 ‘산별노조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 이 두 날개가 한풀 꺾여서 마음껏 날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솔직한 현실이다. 나는 민주노조운동의 양 날개가 새롭게 날개 짓하려면 노동에서 기업별 노사관계 체제를 강제하고 있는 노동법 전면개정과 초기업교섭 및 사회적 대화 활성화, 그리고 정치에서 위성정당 없는 완전 비례대표제 확대와 결선투표제 도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되어야 노동운동의 효능감, 진보정당의 효능감을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낡은 87체제 극복없이는 불평등 양극화 해소 정책도, 차별철폐 사회복지 정책도 힘을 못 받고 중도하차하거나, 제대로 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선진국 복지국가운동의 공통된 경험이다. 눈앞의 현안 중심의 정책 추진은 진정성이 없거나 역사와 구조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무능함만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이 87체제의 막차를 타는 대선이 아니라 ‘2025체제’의 첫차를 타는, 즉 제 7공화국을 여는 대선이 되려면 보다 명확한 공약의 쟁점화가 필요하다.
나는 기업별 노사관계체제를 극복하는 노동운동만이 87체제를 넘어 7공화국을 여는 핵심 동력이라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노동에서의 87체제 극복을 위한 3가지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대통령이야말로 광장의 요구를 실현하는 ‘노동연대’ 대통령이라 부르고 싶다.
왜 ‘노동연대’ 대통령인가?
노동탄압 받던 독재정권 시절 막연히 ‘노동해방’ 대통령을 꿈꾸다가,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그 꿈이 조금씩 현실화되면서 ‘노동존중 대통령’, ‘친노동 대통령’이란 공약이 나왔다.
하지만 3번의 민주정부를 거치면서 노동존중, 친노동을 표방하는 정부만으로는 그 한계가 드러났다. 즉, 노동을 대상화해서 노동을 존중하겠다거나 노동자 편이 되겠다는 식의 나이브한 노동정책, 어떻게 동력을 만들고 지지세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체적 로드맵 없이는 더 이상 보수세력과 자본의 저항을 넘어 복잡다난한 노동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 현실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
지금 시기 광장의 힘으로 이뤄야 할 노동대개혁, 노동대전환은 무엇일까? 노동분야에서 87체제 극복은 무엇을 말할까?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기업별 노사관계체제’ 극복이 아닐까? 복합위기시대, 노동조합이 기업 담장 밖으로 나와서 ‘조합원’ 중심의 협소한 임단협 경제주의 투쟁을 넘어 ‘모든 노동자’를 위한 사회연대 투쟁과 민주주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조합원 중심의 ‘단결’을 넘어 모든 노동자와 ‘연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초기업노조 비율이 59.4%(민주노총 92.2%)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2023년 5월 산별교섭 제도화를 위한 국회 5만 입법청원 달성이 말해주듯이 초기업교섭과 연대를 위한 노동현장의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따라서 빛의 혁명이 만든 이번 대선에서 시대정신이 담긴 광장의 대통령은 ‘무엇을 해주겠다는 선물’을 주는 대통령이 아닌, ‘연대를 위한 길’을 열어주는‘노동연대 대통령’이 되어야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그리고 많은 노동자가 추운 겨울, 광장을 지키고 길을 열면서 탄핵을 이끌어냈다면 ‘노동연대 대통령’은 노동운동과 노사관계가 87체체를 넘어 더 큰 연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동운동 스스로가 모든 노동자를 위한 ‘복지동맹-계급동맹’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연대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동안 노동존중을 내세운 민주정부가 몇차례 탄생했지만, 정책 추진과정에서 정치적 장애물에 부딪치다 보면 급격히 개혁동력을 잃고, 노사 균형이나 속도조절을 내세우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다 결국 공약 이행 약속은 희망고문에 그치고 ‘나중에’ 해야 될 과제로 미루어져 왔다.
따라서 노동연대 대통령이 이런 우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으려면 좋은 공약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행할 동맹세력을 확보하는 것과 집단적 노사관계의 새로운 판짜기를 함께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87노동체제 극복, 노동조합을 기업 담장 밖으로 나오게 해서 연대의 길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 노동연대의 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대통령의 적극적인 행정조치
첫 번째 길은 새 대통령의 적극적인 행정조치다. 이것은 법 개정 논란없이 행정부 수반으로서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몇 가지 상징적 조치는 그 자체만으로 노동운동과 노사관계의 새로운 길은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먼저, 새 정부 새 대통령은 첫 고용노동부 장관에서 노조법 30조 3항에 의거 ‘노동시장 이중구조 극복과 교섭구조 다양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세우도록 지시해야 한다. 즉, 법 조항 그대로 산업·지역별 교섭 등 다양한 교섭방식이 활성화될 수 있는 지원계획과 예산을 세우라는 것이다.
그리고 중앙노동위원장에게는 노조법 29조 3항을 적극 해석해 산별노조 요청시 초기업별 교섭단위를 결정해 가능한 집단조정 방안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이 두 가지만 제대로 추진돼도 초기업 산별교섭은 제도권에 진입할 수 있다.
각 부처 장관에게는 초기업교섭과 노조 정책 참여를 통한 의미 있는 결과 도출을 위해 정부가 모범 사용자로서 관련 산별노조와 노정협의, 정책간담회에 적극 응하도록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공공부문부터 초기업 모범협약안을 만들어야한다.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간의 9·2 노정합의와 공공운수노조의 화물차주에 대한 안전운임제 시행은 눈에 띄는 사례이다.
각 부처 내 위원회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정부 위원회는 공식적으로 대략 600여개 위원회가 있지만 상당수가 개점휴업이거나 노조 참여에 소극적이다. 양대 노총의 경우 80여개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위원회는 또 하나의 의제별 사회적 대화 기구다.
내가 민주노총과 보건의료노조에서 위원회에 참여한 경험을 비춰볼 때, 노조가 조합원 이익을 넘어 국민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산업과 사회정책에 관심을 가지는 ‘정책노조’로 발돋움하는 데는 정부위원회 참여가 상당한 기여를 한다. 당위적 주장을 넘어 구체적 대안을 내기 위해선 노조 스스로가 많은 정책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원회 참여는 밖에서는 볼 수 없는 구체적 고급 정보, 다양한 통계자료를 접할 수 있고, 다수의 공익위원 및 전문가들과 소통과 토론이 가능하다.
또한, 장관은 산하 위원회에 참여하는 산업·업종협회들에게 그 산업을 대표하는 권리를 주는 것과 함께 동일한 의무를 부과해 노조가 요구하는 초기업교섭에 참여하도록 해야한다. 이런 지침만 분명히 한다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정부에게 집단적 의견을 내다가 노조가 요구하는 산별교섭에 대해서는 교섭 당사자가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이중적 태도를 버리고 교섭 테이블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단체협약을!
두 번째 길은 “모든 노동자에게 단체협약을!” 적용하기 위한 법 개정과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35조(일반적 구속력), 제36조(지역적 구속력)에 단체협약 효력확장 조항이 있지만, 높은 적용기준으로 인해 현실에서는 아무런 기능을 못 하면서 사문화돼 있다.
이 조항을 현실화해 공익적 차원에서 차별 개선과 기업 간 경쟁방지 등 공정한 산업환경 조성을 위해 산별 단체협약의 전부 또는 일부 조항의 효력확장이 필요한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이 양적 요건이 아닌 질적 요건만으로 단체협약의 효력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 불평등 완화와 불안정 비정규노동자 노동조건 보호를 위한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단체협약 확장제도를 적용해오고 있다. 이 논의가 본격화되면 모든 노동자에게 단체협약을 적용하기 위해 ‘어떤 협약을, 어떤 기준으로, 어떤 기구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 효력을 확장할지’ 논의가 본격화 될 것이다.
그동안 근로기준법을 상회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한 조직노동자들과 노조가 없어 협약조차 체결하지 못해 근로기준법 이하의 대우를 받는 노동자가 분리된 이중 노동시장에서 연대하지 못한 채 불평등이 확대돼 왔다.
하지만 법 개정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민주노총 16개, 한국노총 29개 산별연맹 등 총 270만 조합원(노조조직률 13.1%)과 1천800만 불안정, 사각지대, 제도권 밖 노동자의 연대가 이뤄지면서 노동시장 통합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사용자에게는 기업별 임금경쟁을 낮추고 산업 규범을 만들면서 산업경쟁력을 높일수 있고, 노조에게는 기업별 실리주의를 넘어 더 큰 계급적 연대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해 프랑스의 업종별교섭위원회나 영국의 전국업종노사공동위원회같은 노사공동위원회 구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 합의 아닌 협의를 중시해야
세 번째 길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회적 대화의 전면 재편이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이 지난 사회적 대화 참여의 경험 속에서 사회적 대화가 정부가 해야 될 책임을 회피하면서 문제해결을 가로막는 블랙홀이 되거나, 노조 팔을 비틀어 합의를 강요하는 식의 정부 정책 관철 수단으로 악용되었다는 비판적 인식을 불식해야 한다.
새 정부에서는 전체 노사관계 개편에 대한 큰 그림 없이 눈앞의 성과에만 급급한 보여주기식 사회적 대화는 굳이 또 반복 할 필요가 없다. 합의를 강요하기보다 충분한 ‘협의’를 우선시해 현장의 신뢰를 회복하면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 참여를 희망하는 당사자들에게 문턱을 낮추면서 노사 또는 노사정 갈등해결을 위한 ‘열린 대화 플랫폼’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전국 수준에서 무리한 합의 추진보다는 중간 수준에서 지역·산업·의제별로 참여를 희망하는 다양한 노사들과 함께 작은 합의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대화는 사회적 대화기구의 위상과 제도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과 방식, 내부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 특히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의 철학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사회적 대화를 국무총리나 경사노위, 국회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한다.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새 대통령의 스웨덴식 '목요클럽'이 필요
가장 상징적인 조치는 스웨덴에서 23년 동안 총리로 재임하며 스웨덴 복지 틀을 완성한 타게 엘렌데르 총리의 대화모델인 목요클럽을 벤치마킹한 한국판 ‘매주 정례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스웨덴 모델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강한 사회’,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지향하되‘ 노동에 기반한 조정 모델에서 ’혁신‘에 기반한 조정 모델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역사적 변천 과정을 잘 참고해야 한다.
대통령은 사회적 대화가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확고한 신념 하에 ‘인정의 정치’를 통한 갈등 해소와 통합에 직접 나서야한다. 그래야 경사노위든 국회든, 그것이 대통령 직속기구든 독립기구든, 사회적 대화가 힘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대화를 노사갈등 문제만 푸는 ‘전술적’ 접근이나 ‘제한적’ 접근이 아니라, 날로 점증하는 사회갈등을 푸는 ‘전략적’ 접근, ‘종합적’접근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동안 사회적 대화하면 스웨덴 모델이 말하기도 좋고 보기도 좋아서 많은 정치인들이 시도를 했다. 2019년 이인영 원내대표, 2020년 정세균 총리의 목요대화, 2020년 김태년 원내대표의 국회판 목요대화 등등. 나름 의미있는 시도였다. 하지만 정세균 총리의 목요대화가 30여회 이상 지속되면서 나름의 성과를 축적했지만, 다른 시도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기존에 몇몇 정치인들이 추진하다가 용두사미에 그친 한국판 목요클럽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대통령실에 사회적 대화 전담팀을 두고 논의 의제와 참석대상을 철저히 준비해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한다. 다양한 층위의 노사 대표를 언제든지 만나 이야기를 듣고, 경제위기 극복, 사회통합으로 나아가겠다는 신뢰와 연대의 메시지를 보여줘야 한다.
90%가 넘는 국민 지지에도 불구하고 불통으로 밀어붙인 윤석열표 2,000 의료개혁이 실패로 끝난만큼 새 정부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 대화,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국민공론화,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지역공공병원 확충-지역의사제-공공의대 설립'이라는 하나의 정책 묶음으로 일괄타결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배제되거나 악마화되어서 안 된다는 점이다. 의사를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로 만들어야 한다. '의사 개혁'이 아니라 '의료 개혁'을 해야 한다.
산별교섭, 예측가능하고 지속가능한 노사관계의 토대
초기업(산별)교섭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오해와 진실이 있다. 하나는, 노조가 기업을 넘어 초기업 산별교섭과 정책협의에 참여하는 것은 노조에게만 일방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친노동정책이라는 사용자측의 우려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느 일방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라 복합위기시대, 예측가능하고 지속가능한 노사관계를 위해 노사정 모두에게 새로운 게임의 룰을 만드는 것이다. 노조의 초기업 교섭과 정책 참여에 대해 사용자는 노조 힘과 영향력의 비대화를, 정부는 노조가 막무가내로 정부정책에 비토만 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노조 또한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더 크고 무거운 짐을 안고 제도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정치적 부담 때문에 참여를 반대하는 세력도 다수 존재한다.
또다른 하나는, 초기업 산별교섭을 강조하는 것이 기업별교섭이 중요하지 않거나 필요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여전히 노동의 모든 것이 기업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임금과 복지, 안전한 일터, 직장내 괴롭힘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내 교섭과 노조의 역할은 중요하다.
따라서 초기업교섭을 강조하는 것은 기업별교섭이냐 초기업 산별교섭이냐의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요구를 온전히 해결해나가기 위해 기업과 산업, 전국 차원에서 교섭구조를 다양화 하자는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기업에만 강제되어있는 교섭구조를 지역과 산업,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다양화하자는 취지이다.
절박하고 절실한 초기업 노사관계 재편
나는 이 세 가지 길을 ‘새 정부 출범 직후 '노동연대 대통령'이 100일 안에 노동분야에서 꼭 해야 할 일’로 제안하고 싶다. 6월 3일 이후 새 정부앞에 놓여있는 상황은 녹녹치않다. 경제침체, 마이너스 성장, 감세경쟁으로 인한 세수 부족, 미국발 통상 위협,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 등 어느 것 하나 쉬운게 없다.
지난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최저임금, 공공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학습효과까지 겹쳐 노동과 복지정책을 전면에 띄우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진정한 내란청산, 극우세력의 발호를 막는 것은 그 배경이 되고 있는 불평등 해소, 나아가 사회대개혁, 노동연대 사회연대 실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새 정부의 균형감있는 경제-노동정책이 절실하다. 그래서 산업정책을 위한 초기업 교섭과 갈등 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화가 더욱 중요하다. 경제위기, 사회통합을 빌미로 노동문제를 하위에 두는 순간 더 큰 대립과 갈등, 사회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특히 초기업 노사관계 전면 재편 없이 불평등 해소,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은 허망한 꿈이다. 무능하거나 기만적일 뿐이다. 새 정부는 복잡하고 골치 아픈 노사관계 정책보다 눈앞에 숫자가 보이는 일자리 고용정책을 더 선호하는, 그런 쉽고 안전한 길만 택하면 안 된다.
고 노회찬 의원이 선거제 개편이 얼마나 절박하고 절실했으면 ‘약자들의 입장까지 대변할 수 있는 평등선거제도만 가능하다면 악마에 영혼까지 팔 수 있다’고 말했을까. 나 나름 노동운동하면서 기업교섭, 산별교섭, 사회적대화, 정부 위원회 참여 등 모든 교섭을 경험하면서 수많은 성과와 한계, 노사관계의 속살을 잘 알고 있기에, 노동운동의 대표성 위기, 노동시장 분단 위기, 사회 재생산 위기를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기에 정말 똑같은 심정이다. 노동조합이 국민의 박수를 받고, 모든 노동자와의 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초기업 노사관계, 통합연대교섭만 가능하다면 악마에게 영혼까지 팔고싶은 심정이다.
노동조합, 요구를 넘어 스스로 자기혁신에 나서야
대선 시기라서 노동공약 중심의 제안을 했지만, 결국 노동정책의 주체이자 중요한 당사자는 노동조합이다. 복합위기 시대, 이를 극복해나가기 위한 양대 노총 270만 조직노동의 주체적 혁신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노동운동의 양 날개라고 했던 산별노조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이 두 날개가 한풀 꺾여서 제대로 날지 못하고 있다. 정치활동, 연대활동, 대규모 집회 등으로 인해 잠시 도드라지는 존재감은 착시효과일 뿐이다. 엄중한 내부 성찰과 함께 내실을 다지기위한 치열한 집단토론이 필요하다. 이는 그 어느 활동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돌이켜보면, 최근 10~20년 동안 각급 단위마다 거의 비슷한 사업계획과 평가가 반복되고 있다. 노동조합운동이 덩치는 커졌지만 내부는 이에 비례해서 더 단단해지지 않았다. 조합원 ‘단결’을 넘어 모든 노동자와의 ‘연대’를 위한 노동운동의 대혁신 없이는 장밋빛 대선공약도, 확장되고 있는 사회연대 민중연대도 빚 좋은 개살구이거나 사상누각이 될수 있다.
87노동체제 극복을 위한 노동의제가 수면 위에서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지는 않지만 다행히 수면 아래에서는 후보와 주요 노조들간에 정책협약 등을 통해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다.
총연맹 차원에서는 5월 1일 한국노총과 이재명 후보간에 이루어진 <노동이 만드는 정의로운 사회대전환 대선 승리 정책협약서>에 “산별교섭 촉진을 통한 사회적 임금체계를 구축하고”, “사회연대 교섭체계를 확산시키기 위하여 산업·지역·업종 단위로 체결된 단체협약의 효력확장 제도개선, 공공부문에서 모범적 산업․업종․지역 단위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모델을 구축·확산시키기 위한 제도개선을 추진한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민주노총도 진보정당과의 정책협약에서 “초기업 교섭의 활성화로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다양한 방식의 초기업 교섭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단체협약 효력 확장 제도의 실효성 강화, 산업·업종에서 사용자를 대표하는 사용자단체의 초기업 교섭 참가 촉진, 공공부문에서 정부의 모범 사용자 역할을 강화”하기로 한바 있다.
또한 산별노조 차원에서는 5월 14일 보건의료노조와 이재명 후보 협약식에서 “보건의료 정책과제 해결을 위해 산별교섭, 초기업교섭 등 관련 제도를 마련하고, 사회적 대화와 거버넌스 구조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상호 노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협약 내용들은 지난 대선에서의 정책협약 내용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어서 대선 이후 87노동체제 극복의 좋은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오른다. 이전 대선과는 다른 대선이 돼야 한다. 이번엔 87노동체제를 반드시 넘어서는 대선이 되어야한다. 새 정부도 노동조합도 함께 달라져야한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노동연대 대통령’이 취임 100일내 세 가지의 길을 활짝 열어야 노동운동이 살고, 노사관계가 제 역할을 하면서, 경제위기 극복, 불평등 차별 해소, 사회통합, 기후정의, 경제 민주주의와 평등복지사회가 가능하다.
*이 글은 지난 4월 30일자 매일노동뉴스에 게재된 <‘노동연대 대통령’이 되려면 3가지 열어야> 라는 원고에서 제한된 지면 때문에 누락된 내용을 추가 보완해서 작성된 것입니다.
출처: 『e노동사회』 2025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