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 홉슨의 제국주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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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 이 책을 읽었을 때 레닌이 쓴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가 이 책을 상당부분 "베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레닌은 "홉슨이 제국주의의 경제적 정치적 특성을 매우 뛰어나게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홉슨과 레닌의 차이는 크다. 홉슨은 사회개혁을 제국주의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반면, 레닌은 사회혁명을 통한 제국주의의 타도를 주장했다.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에 대한 이해에서 레닌은 힐퍼딩의 『금융자본』에 많이 빚졌는데, 금융자본의 무한한 확장욕이 제국주의의 실질적인 동력이라는 데는 사회자유주의자인 홉슨도, 사회혁명주의자인 레닌도, 사회민주주의자인 힐퍼딩도 생각을 같이했다. 제국주의 문제에서 레닌과 힐퍼딩은 홉슨의 학생이었던 셈이다.

제국주의는 현재진행형

" 나는 곳곳에서 국가라는 명분과 구실 아래 그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부유한 자들의 음모를 보고 있다. … 제국주의가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에게 그 정책을 강요하는 특정계급들의 이해관계를 동기로 삼는다." 백년이 지났지만, 지배계급의 기득권에 봉사하는 제국주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선교사, 여행가, 사냥꾼, 과학자, 무역업자 등의 모든 사람들은 본래의 의미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공인받은 대표가 아니라 사사로운 개인 동기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들로서 국민이 승인하지도 않은 위험부담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만 금의 돈과 수천의 생명을 소비해 달라고 국민에게 멋대로 요청한다." "(제국주의의) 자연적인 지지자로서 군국주의, 과두정치, 관료정치, 보호무역, 자본의 집중 및 급격한 무역의 변동을 수반하는 제국주의는 … 근대 국민국가의 최대 위험"이 되고 있다.

소수 엘리트를 위해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국민 대다수를 속이고 등치는 제국주의자들의 통치술은 지금도 여전하다. 군사력증강과 군비경쟁에 몰두하는 군국주의적 속성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종교와 과학, 상업과 무역의 깃발을 흔들며 이윤을 찾아 헤매는 물신주의적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제국주의의 전매특허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과 혐오 역시 제국주의의 뺄 수 없는 특징이다. 특히 금융자본의 역할은 백년이 흐른 지금에도 제국주의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금융은 차라리 제국주의라는 엔진의 운전자로서 그 힘의 방향을 지시하고 활동을 결정한다. … 금융업자의 이해관계는 제국주의를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힘을 집중시키는 능력과 날카로운 계산력을 갖고 있다. … (결국) 최종적인 결정은 금융업자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다."

민중의 통제와 국제주의

홉슨이 생각하기에, 제국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순수한 민주주의의 확립, 즉 민중이 실제로 통제하는 대표를 통하는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공공정책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제국주의는 "한 국민이 자기의 권력에 대한 이 위험한 강탈행위를 떨쳐버리고 국민의 자원을 국민의 이익이 되는 일에 사용하는 능력"을 통해 막아낼 수 있으며, 이 능력은 "민주주의를 정치 경제적 현실로 만들 국민의 지성과 국민의 의지의 교육에 있다"고 홉슨은 말한다. 제국주의를 패퇴시키기 위해선 "강력하고 확고하며 잘 발달되고 책임을 지는 여러 나라의 국민들이" 앞장서서 "국제주의, 즉 국가들 사이의 신뢰할만한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미제국주의 의 전횡을 목도하고 있는 지금 제국주의가 미국 같은 초강대국만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 사회에도 제국주의자들이 존재하며, 제국주의로 나가고 싶은 정치적 경제적 욕망이 존재한다. 이들은 미제국주의는 물론, 다시 발흥하고 있는 일본제국주의를 등에 엎고, 때로는 혼자서라도 제국주의적 팽창을 꿈꾼다. 이들에 대한 경계와 규제가 시급한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아무튼 제국주의의 야욕이 세계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은 지 백년도 안 되어 다시 제국주의가 주도하는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시대가 오고야 말았다.

J.A. 홉슨의 『제국주의론』이 세상에 나온 게 1902년이고, 한글로 번역된 게 1982년이다. 세상에 나온 지 백년, 한글판이 나온 지 이십 년이 지났지만, 이 책은 오늘날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20세기 말, 21세기 초에 걸쳐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이 소말리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로 확대되고 있는 지금, 제국주의에 대한 홉슨의 분석과 경고는 빛 바랜 역사책의 문구가 아니라 절박한 현실의 문제로 다가온다. (창작과 비평사/6천원, 1994년 구입 당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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