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戊戌年),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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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각자 새로운 꿈과 희망을 꾸어본다. 전쟁 없는 한반도, 국민의 삶을 보듬는 정치, 안전한 대한민국, 건강한 일터, 행복한 가족 등 소박하지만 절실한 국민들의 바램이다. 2016년 촛불시위와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를 거치며, 시민들의 외침은 ‘이게 나라냐’는 자조적 한탄에서 ‘대한민국 이렇게 바꾸자’는 희망의 요구로 바뀌었다.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가져왔던 1987년 체제가 변곡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 형식적이고 수동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의 선언을 실현하는, 실질적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새로운 길로 접어든 것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의의
 
문재인정부 출범이후 지난 8개월은 격동의 시기였다. 길게는 외환위기 이후 20년, 짧게는 이명박·박근혜정부 9년의 낡은 유산을 청산하고 새로운 도약의 징검다리를 놓는 시기였다. 문재인정부는 국민들의 개혁 열망을 받아 안고 호랑이의 등 위에 올라탄 형국이다. 국민들의 요구는 촛불혁명에서 드러난 것처럼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적이다. ‘정권 교체’를 뛰어넘어 ‘세력 교체’를 요구한다. 수구 보수세력의 불패 신화를 끝내고자 한다.
박근혜 탄핵은 대통령의 탄핵을 넘어선 보수세력의 붕괴를 의미한다. 말로는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한국 보수세력에 종말을 고한 것이다. 문재인정부도 국민대중의 진보와 개혁의 목소리에 조응하지 못하면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여소야대의 정치 상황에서 믿을 것은 국민 대중들의 깨어있는 각성과 응집된 열망뿐이다. 정치개혁과 경제개혁의 성패 여부가 국민들의 지지 여부에 달려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지방선거,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문재인정부 출범 1년 1개월 만인 2018년 6월13일에 제7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역대 지방선거 결과에는 뚜렷한 경향성이 엿보인다. 정부 출범 초기에 실시되는 선거는 집권세력의 승리로, 후반기 선거는 패배로 끝이 났다. 정치는 생물이어서 예측이 쉽지 않지만, 정부여당의 자충수만 없다면 현 집권세력의 승리는 분명해 보인다. 선거의 3요소인 인물, 구도, 이슈 등 모든 부분에서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당, 민중당 등 진보정당들의 지방선거 예상 성적표는 어둡다. 울산, 경남 등 전통적인 진보벨트에서 기성 정치의 파열구(破裂口)가 열리기를 기대하지만, 진보세력의 분열 및 노동현장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냉소적 분위기는 쉽게 치유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도와 비례대표의 낮은 비중은 진보정당의 진입을 가로 막는 구조적 족쇄이다. 소선거구 다수제는 최다득표자 1인만 당선되는 방식이기에, 군소 진보정당이 지역구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또한 전체 의석에서 비례 의석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진보정당이 비례 의석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선거제도 탓만 할 상황도 아니다. 현실에 토대한 역량만큼 뚜벅뚜벅 전진해 나가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역 단위에 산재한 정치활동 경험과 역량을 하나의 단일 대오로 결집할 수 있는가이다. ‘묻지 마 통합’을 뛰어넘는 진보정당의 현대화된 이념과 노선의 정립과 대중화가 선차적이다.
과거 진보진영은 지방선거를 통해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해 왔다. 진보진영의 차별화된 의제 제시 및 실행은 선거의 구도를 바꾸고, 지지층의 공감대를 효과적으로 모을 수 있는 방법이다. ‘무상급식 – 복지확충 - 저녁이 있는 삶 - 비정규직 정규직화 – 생활임금 – 청년배당 – 탈핵’ 등으로 이어져 왔던 정책 개발을 촉진해야 한다. 주권재민과 지역자치의 새로운 모범을 지방분권화의 관점에서 구현해 나가야 한다.
 
 
인정투쟁에서 산업민주주의 확립으로
 
지난 10년 노동조합은 정권과 자본의 무단적인 탄압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목표였는지도 모른다. 멀쩡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한 순간에 법외노조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복수노조를 악용한 민주노조 말살 정책으로 금속노조 만도지부를 비롯한 수많은 노조들의 기본권이 박탈당했다.
촛불시위의 주역이었던 민주노조운동은 정권 교체라는 정치적 변화 속에서 새로운 도약기를 맞고 있다. 노동조합을 둘러싼 우호적인 환경은 신생노조의 광범위한 설립에서 확인된다. 고용노동부가 2017년 12월7일 발표한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2016년 말 전체 조합원은 전년보다 2만 8천 명 늘어난 196만 6천 명이다. 법외노조라는 이유로 통계에서 빠진 전교조를 포함하면 전체 조합원 수는 2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노조 조직률도 전년보다 0.1%포인트 오른 10.3%를 기록했다.
통계만이 아니라 주요 산별노조들의 조합원 수 증가세도 뚜렷하다. 보건의료노조의 조합원 수가 5만 7천 명에 이르고, 공공운수노조의 조합원 수는 15만에서 19만으로 늘어나면서 20만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노동조합의 능동적인 조직화 사업 여부에 따라 조합원 수는 시나브로 증가할 것이다. 관건은 기업 단위에 집중된 노동조합의 인적, 물적 역량을 상급단체로 집중하고 배분할 수 있는 지도력이다. 문재인정부에서 노동조합이 확보해야 할 핵심 과제는 ‘노조 할 권리’의 쟁취이다. 전국공무원노조, 전국교직원노조의 합법화뿐만 아니라,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소방·교정·경찰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국제노동기준의 비준은 책상 위의 서명이 아니라, 현실의 제도 개선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은 노동조합의 인정투쟁(認定鬪爭)이었다. 헌법에 화석화되어 있던 노동권을 사회로 호명(呼名)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한국사회의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소극적인 인정 및 배제에 머물러 왔다. 노동조합을 생산과 경영의 동반자가 아닌 임금인상의 도구로 전락시켜 왔다. 노조도 공장 앞에서 멈추어 선 민주주의를 공장 안으로 확장하는 경영참여운동에 소극적이었다. 이제 노동조합은 기업경영의 제도적 참여와 개입을 꾀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경제성장의 핵심이며 국가경제 및 산업정책 결정에 책임 있는 주체로서, 발언권을 당당하게 보장받아야 한다. 이는 사업장 차원의 산업민주주의 운동으로 사회적으로는 사회적 대화의 완성으로 실현된다.
산업민주주의(industrial democracy)는 기업의 핵심 이해당사자인 노동자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기업 내부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이다. 국가의 통치에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있다면, 기업의 의사결정 즉 기업지배구조도 민주주의가 적용되어야 한다. 산업민주주의는 노동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함으로써 산업사회의 시민권을 보장(인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산업사회의 시민권은 노동자 또는 노조가 기업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기업의 의사결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동시에 성과배분은 물론 기업에 대한 책임과 위험을 분담하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민주주의의 원리는 사회적 대화로 확장되어야 한다. 노조가 자신의 힘을 기업의 담장을 넘어서 산업과 정치 영역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산별·업종·지역교섭 등 초기업 단위 교섭의 추구, 정부의 각종 위원회 참여와 개입력을 확대 등을 꾀해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사회적 대화에 나서야 한다. 현재 쟁점은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이 아니라 어떻게 무엇을 통해 사회적 대화를 추진할 것인가이다. 과거 사회적 대화의 실패 원인으로 정부 주도의 일방성, 노사 간의 낮은 신뢰, 합의사항 이행에 대한 불신 등이 지적된다. 과거 노사정위원회는 노사정 간 대화와 협력을 통한 자율적인 문제 해결 기구가 아닌, 정부 정책의 일방적 관철을 위한 부속 기구로서 기능해왔다. 노사정위원회의 명칭에서 표상되는 거부감 및 불신 해소를 위해 사회적 대화기구는 재구성되어야 한다. 노동계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구는 우(優)를 범해서는 안 된다.
 
 
혁신 없는 노동조합, 미래도 없다
 
노동조합운동은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87년 대투쟁 이후 지난 30년 동안 눈부신 성과만큼이나 아쉽고 안타까운 한계가 노정되었다. 노동운동의 한 길에 섰던 동지들 간에 단결과 우애보다는 섣부른 날선 비판의 칼날이 앞서고, 정파들의 좁은 아집이 운동의 대의를 어지럽힌 경우가 많다. 부끄럽지만 노동운동의 민낯이다. 노동인권 신장과 삶의 질 개선, 사회 개혁의 선도자라는 긍정 평가와 함께, 정규직·대기업·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배타적 이익에 매몰된 ‘이익집단’이라는 비판이 공존한다.
노동운동에 따듯한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던 시민사회의 시선이 최근에는 곱지만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냉소적이며, 노동운동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극단적인 비판까지 제기된다. 많은 사람들의 노동조합의 위기를 경고하고 노동조합의 역사적 소명을 강조한다. 노조 조직률, 내부 민주주의, 리더십, 연대성, 정당성 등 노동운동을 평가하는 어느 지표 하나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든 상황이다.
어찌됐건 30년의 세월이 지나 노동운동에도 세대교체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노동운동의 1세대들은 몇 년 안에 정년퇴직 할 나이가 되었고, 후배들이 산업현장과 노동운동을 떠맡아야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듯이 사회도 바뀌고 작업현장이 변화하였다. 노동자의 구성도 다변화하였고 그 요구도 다층화 되어 ‘단일한 노동계급’이라 말하기 힘들 정도다.
대·내외적인 상황 변화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비전과 전망을 요구한다. 이를 추동할 노동조합의 변화와 혁신이 불가피하다. 사회적 약자인 아닌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물적, 인적 역량을 갖춘 사회 조직으로서 역사적 책무가 요구된다. 혁신의 출발은 노동조합의 목표 및 상(image)의 공유에서 시작된다. 그 해답은 “인간답게 살자!”며 다짐했던 19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하며, 노동운동의 목표가 무엇인지 따져보며 활동하자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근원적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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