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사회야,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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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현금 인출기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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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준 지음, 매일노동뉴스 냄, 1만 5천 원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유명한 경구가 있다. 과거의 쓰라린 경험에서 배워 오늘의 어려움을 대비하지 못한 무능력을 조소하는 의미일 터다. 그러나 되풀이되는 실수의 경험일지라도, 그러한 선택으로 어쩔 수 없이 내몰려 고통을 직접 체험하는 사람들은 결코 웃을 수 없다. 웃음거리 또한 될 수 없다. 수도와 식량 공급이 끊긴 휑한 공장 안에 갇혀, 스티로폼을 녹이는 최루액이 언제 날아들까 걱정하고 동료 아내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되는 이들에게서, 웃음을 위한 심적 공간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를 두고 비웃는 패륜을 저지르기도 쉽지는 않은 노릇이다.  

‘잠·일·술 세대’, 공장 감옥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조건준 금속노조 정책국장이 이 책을 써야 할 어떤 절박성을 느꼈던 계기도 최근 되풀이되고 있는 이러한 고통의 경험이었다고 한다. 즉, 지금도 급박하게 진행 중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구조조정 저지투쟁 말이다. 금속노조 활동가로서 그 투쟁과 결합하며 상기하게 된 10여 년 전 기아차, 만도기계, 현대차, 대우차 투쟁 등의 아픈 기억들, 그 아물지 않은 상처가 끊임없이 되새김질시키는 풀지 못한 의문들이 이 책을 써 내려간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노동운동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쉽게 읽히고 아프게 스민다. 외환위기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되풀이하며 심화시키고 있는 분열적 상황을, 그 중심세대의 목소리로 스스로 딛고 있는 곳에서부터 성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찰로부터 소박하지만 절실한 희망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필자 스스로가 어느 정도는 그 일원이기도 하다는, ‘공장 감옥’에 갇힌 ‘잠·일·술 세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용불안증에 사로 잡혀 자본주의라는 경기장에서 벌떡 일어서 있는 사람들. “벌 수 있을 때 벌자”며 야근·특근도 오케이!, 그리하여 세계 최장 노동시간에 녹초가 돼 ‘일’하고 남는 시간엔 ‘잠’자고 ‘술’마시는 것밖에는 할 게 없는 제조업 정규직 중년남성 노동자들, 바로 1987년 노동운동의 중심세대 말이다. 그리고 이들이 지금 현재 구속돼 있는 ‘공장 감옥’의 프레임과 ‘1등보다 미운 10등’의 처지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이를 위해 노동조합운동은 어떤 규범과 대안을 만들고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노동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야 이 규범과 대안을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인 화두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비판은 주로 원칙과 행동의 불일치, 아니 현장성과 전투성의 원칙을 기만적으로 활용하는 기득권 수호의 노동운동, 즉 ‘전투적 실리주의’에 맞춰져 있다. 물론 그 비판은 단죄가 아니라, 역사성을 긍정하는 토대 위에서 지양해야 할 것으로서의 변증법적 비판이다. 또한 이 책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러한 프레임과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서 ‘줄이기 나누기 채우기’라는 연대적 삶의 양식을 당장 현실에서 실천할 것을 주문한다. 개량적이니 뭐니 떠들지 말고, 거기에 노동조합이 앞장서라는 것이다. 그런 실천이 누적될 때만이 공장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의 힘’을 노동조합이 확보할 수 있게 되고, 구조조정 등 시장의 힘에 맞서 싸워 새로운 사회적 규범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 제1세대의 경험들, 더 많이 소통됐으면

세상 무서운 것 없는 젊은 혈기로 1987년 대투쟁 즈음 노동운동을 시작한, 이른바 ‘민주노조운동 제1세대’도 벌써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들이 되어 간다. 이들이 축적한 지적, 실천적 경험들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자산은 세대로 이어져 현장에서 제대로 재생산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경험을 대상화하고 성찰하는 이러한 책은 더욱 반갑다. “이론가인지 실천가인지 헷갈리는” 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경험들을 사회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시도들을 했으면 좋겠다. 이 책이 그러한 이들에게 직접적인 동기와 자신감을 부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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