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인종주의는 망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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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인종주의는 망령이 아니다.

이다현 0 1,032 2022.10.11 09:00

[돋보기] 인종주의는 망령이 아니다​1)



작성: 이다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




“Woman, Life, Freedom” 현재 세계는 ‘히잡 시위’라고 불리는 이란 반정부시위에 연대하고 있다. 이 시위의 확산은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이란 여성의 의문사로부터 시작된다. 이 사건은 이란 여성을 향한 인권 탄압이라는 뚜렷한 문제를 보여준다. 그것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연대를 표명한 많은 사람 중 이라크 출신 스웨덴 유럽의회(EU) 의원인 아비르 알살라니Abir Al-Sahlani는 5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 연단에 올라 연설하였다. 그는 “이란 여성들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우리는 당신과 함께 할 것”이라 발언하며 머리카락을 잘랐다. 우리는 이것을 한 치의 고민 없이 히잡에 구속된 무슬림, 여성 인권을 탄압하는 이슬람 종교와 그 나라의 참상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몸을 통한 타자화됨과 인종주의의 역사를 풀어가고 있다. 작가는 인종화된 몸을 통해 인종주의의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이성, 자유, 평등, 생명 같은 단단한 명사들이 얼마나 취약한 지반 위에 서 있는지, 분류의 욕망과 구분 짓기의 탐욕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 암시하는 작업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7).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라는 책의 부제처럼, 인종주의를 둘러싼 여러 의제가 등장한다. 다양한 의제를 관통하는 담론은 인종주의는 비합리적인 것(the irrational)을 합리화(rationalizing)함으로써 편견과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것(78), 타자화되고 희생자화하는 시각을 어떻게 행위의 주체로 복원할 것인지(166) 그리고 이분법적 구분의 폭력성-식별과 낙인찍기- 등이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필자가 던졌던 질문인 ‘히잡 시위는 이슬람 사회의 참상으로 정리될 수 있는지, 또한 왜 유럽을 중심으로 연대가 확산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사건 정보를 간단히 나열해보자면 1) 이슬람 사회는 여성이 히잡을 쓴다. 2)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이 경찰 조사 중 의문사를 당했다. 3) 경찰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 해석에 근거해 이란 여성의 복장을 단속하는 도덕 경찰이다. 4) 세계(특히 유럽)는 해당 사건에 분노하고 함께 연대한다. 5) 연대는 이슬람 종교국의 반인권성을 비판하고 있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정보를 모아 한 문장으로 나타낸다면, ‘반인권적 이슬람교 국가의 법으로 인해,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이 죽임-희생-을 당하자 전 세계(서구사회)가 분노하였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 문장은 이란 여성이 희생자화 되었다는 점에서 인종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만연한 이슬람포비아로 인해 무슬림 남성은 이슬람 복장에 폭탄을 든 테러범의 모습으로, 무슬림 여성은 베일을 뒤집어쓴 가련한 가부장제의 희생자로 스테레오타입화되어있고(267)”,“무슬림 여성의 복장을 문제 삼는 것은 무슬림 여성의 몸에 대한 개입을 통해 이슬람포비아를 표출하는 방식이다. 베일을 쓴 여성에 대한 공격은 ‘젠더화된 이슬람포비아’(gendered islamophobia)라는(285) 것이다. 


이슬람 사회에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히잡이 반드시 여성 억압을 상징하지 않음에도 서구사회는 무슬림 여성을 가부장제의 희생자로만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란 여성의 죽음을 제삼자의 시선에서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히잡을 쓸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 저항의 의미로 쓰지 않는 것인지. 그가 어떠한 이유로 히잡을 쓰지 않았는지 지금으로선 아무도 알 수 없다. 행위 당사자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그를 수동적인 존재로 대상화시켜 이슬람 가부장제의 희생자로 재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슬림 여성의 참상으로 정리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슬람교 국가 여성의 비극’이라는 명제와 ‘왜 영향력을 지닌 서구인물의 연대가 눈에 띄느냐?’는 질문은 서로 맞닿아 있다. 이는 베일 논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베일 논쟁의 본질은 무슬림 여성의 몸을 ‘볼모’로 잡고 이슬람 종교와 문화를 원래부터 젠더불평등한 것으로 낙인찍은 후 무슬림을 ‘악마화’(demonization)함으로써 서구사회와 공존할 수 없는 존재로 또다시 낙인찍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285). 서구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해 과학적 방법과 체계적 학문이 동원되고​2) 서구적이지 않은 것은 삭제와 계몽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식민지화와 세계화를 통해 서구의 지식체계와 행위를 답습하고 그들의 언어로 재현하고 재생산한다. Woman, Life, Freedom 시위로 퍼져나가는 담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인종주의는 과거의 잔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종주의는 여전히 인간의 다양한 몸을 통해 설파하고 공고화되고 있다.


1) 『낙인찍힌 몸-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 염운옥 지음. 돌배게 출판
2)  동시에 서구사회의 젠더 불평등한 경험은 사적인 것으로 치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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