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노사정 대타협의 조건

김종진의 블로그

[펌] 노사정 대타협의 조건

김종진 0 2,949 2004.06.12 03:37
[시론] 노사정 대타협의 조건 - 신광영(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신문 2004-06-06]



총선 이후 상생이라는 용어가 갑자기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다같이
사는 것’을 의미하는 이 용어는 너무나 평범한 용어이지만, 한국
정치에서는 너무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용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까지 ‘다같이 망하는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다.

노사관계에서도 상생이라는 말이 ‘윈·윈’이라는 용어 대신에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상생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상생을 말하는 것도 지금까지
경영계와 노동계가 ‘다같이 사는 것’을 서로 도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사정 대타협은 흔히 상생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논의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노사정 대타협이 가능할까? 흔히 노·사·정 사이의
신뢰가 중요하고, 현실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논의된다. 주로 인식과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노사정 대타협은 노·사·정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인식과
자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노사정 대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충분하게 마련되지 않는다면, 노사정 대타협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처럼 무모한 시도가 될 것이다.


먼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노사 대표가 대표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노동계의 경우 현재와 같이 노동조합총연맹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노동조합의 활동이 기업별로 이루어지는 경우 총연맹의 통제는 대단히
미약하다. 실질적인 노사정 대타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업별
노조체제에서 벗어나 산별 노조체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 ‘다같이 사는것’ 도모해야 -


경영계의 경우, 대기업을 대변하는 경영자 단체와 중소기업을 대변하는
중소기업가들의 단체는 사안에 따라서 첨예하게 다른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많은 경우 노사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인식과 이해는 일반 회원기업이나 노조
조합원들과 다른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노사정위원회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회원 기업이나 노조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기가
힘들고, 때로 대표들이 각각의 조직 내부에서 불신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둘째, 조직률이 높아서 타협이 적용되는 범위가 넓어야 한다. 특히 노조와
관련되어 있는 부분들은 노조가 없거나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근로자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적은 경우 타협 내용은
제한된 근로자들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그 효과는 줄어들 수 있다.


셋째, 노사정 대타협 결과가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노사정위원회 결정 사항에 대해서 정부
관련부처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사정위원회 결정사항이
행정부처 결정보다 상위의 결정으로 인정받아야만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노사정위원회가 행정부처에 ‘종이호랑이’로 인식되는 한, 그리고
노사정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 한, 노사정위원회는 타협을
이끌어 내기 힘들다.


노사정 대타협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단순하게는 참여주체들
사이의 신뢰부족으로 인한 것이지만, 신뢰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한국의
노사관계 제도와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후진적인 노사관계 제도가 행위자들 사이에 불신을 지속되게 하고 있다.


- 결정사항 정부도 수용을 -


불신을 신뢰로 바꾸는 것은 단순히 스위치를 바꾸는 것처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불신을 낳는 제도적인 부분의 개혁이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예측 가능한 입장과 태도를 보여야 한다.
예측 가능한 행동을 보인다면, 그것에 기초한 현재의 타협은 가능할 것이다.
불신이 불식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예측 가능하지 않은 태도에
있다. 특히 정부 정책의 일관성은 이러한 점에서 중요하다.


이것은 또한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말과 실질적인 정책의 일관성을
포함한다. 과거 노동계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즉흥적인 발언들이 정부에 대한
불신을 크게 증폭시켰다. 상생은 현재 정치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노사정이 정말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의지를 갖고
있을 때만 그것은 가능할 것이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