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노조 조직화 초동주체의 '성장'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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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노조 조직화 초동주체의 '성장'에 관한 단상

이주환 1,186 2023.05.21 11:55

[연구소의 창] 노조 조직화 초동주체의 '성장'에 관한 단상 



작성: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이른바 노조 조직화 초동주체란 어떤 이유로든 무노조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건설하고자 처음으로 행동에 나선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요컨대 초동주체란 자신이 속한 노동 현장의 분배 및 관리 질서 등을 근본적으로 바꿔보겠다고 개인 신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용자에 저항하는 발언과 실천에 나선 용감한 사람들이다. 일종의 저항적 사회운동가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초동주체는 노조 조직화 시도가 성공하면 사업장 내 단위노조(기업별노조 또는 초기업단위노조 하부조직)의 대표자나 임원 활동에 몰입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판을 벌인 사람이 발을 빼지 말라는 주변의 압력 탓도 있고, 기왕에 시작한 거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본인의 욕심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이 조금 바뀌었으면 좋겠다. 요컨대 이들이 단위노조의 경계를 넘어서는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단위노조 활동가를 사회혁신가로 성장시켜야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 노조 건설과 가입이 매우 활발했으니 초동주체로서 조직화 과정을 경험한 이들도 꽤 늘었다. 대략 추정해보면 지난 5년 사이 단위노조의 대표자만 2천 명에서 3천 명 증가한 것 같다. 고용노동부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 사이 단위노조는 대략 941개, 조합원 수는 966천 명 늘었다. 고용노동부 통계는 초기업단위노조 하부조직을 빼고 기업별노조만 단위노조로 집계한다는 점, 최근에 기업별노조보다 초기업단위노조의 조합원이 더 빨리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동조합 단위조직의 대표자는 941명이 아니라 그 두 배 이상, 2천 명 이상 늘었을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 초기업단위노조가 활발하지 않던 2000년 전후 노동조합당 평균 조합원 수가 3백 명 정도였던 점을 고려하면, 정확하지는 않으나 966천 명의 조합원이 속한 단위조직은 3천 개가량일 수 있다.

나는 초동주체로서 조직화 과정을 완수하고 노동조합 임원이 된 이들 중 상당수가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혁신가로 활동할 자질을 충분히 갖췄다고 믿는다. 사례분석과 면접조사를 여러 차례 하면서 노동조합 만들기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이를 주도하는 이들에게는 다양한 역량이 요구되며, 그 과정에서 체화된 능력이 다른 분야에서도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초동주체의 처지에서 노동조합 만들기란 크고 심각한 피해를 가져다줄 수 있는 공통의 문제를 발견한 후, 조직적 수단을 매개로 동료와 함께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잘 완수하려면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문제 상황을 심층적으로 파악하는 역량, 문제 상황에 연결된 복잡한 이해관계를 합당하게 조정하는 역량, 사람 사이에서 참여를 끌어내고 갈등을 완화하는 역량, 도덕적 가치 지향과 장기적 조직 전망에 기초하여 공동의 실천 방향을 결정하는 역량 등이 요구된다. 요컨대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협상가’, ‘공감 능력을 갖춘 퍼실리테이터’ ‘집단정체성을 만들고 전달하는 이야기꾼’, 그리고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리더가 돼야 한다.

 

단위노조 활동가에게 더 많은 교육과 연결망을

 

물론 모두가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한 노동조합 활동은 집단행동조직민주주의에 기초해 있으므로 임원 한 명이 이 모든 역량을 갖출 필요는 없다. 게다가 노조 조직화 과정에서는 부족한 부분에서 상급단체 소속의 전문활동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어쨌든 내가 현장 조사 과정에서 만난 단위노조 대표자 중 일부는 노조 조직화 경험을 통해 뛰어난 사회적 기술을 갖춘 인재로 성장해 있었다. 컴퓨터를 켜는 것도 잘 못하던 60대 비정규직이 국가법령센터 홈페이지에서 관련 판례와 해석례를 수시로 찾아 분석하거나, 사용자 지시 따르는 것에만 익숙하던 하위직급 노동자가 조합원 10명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100명에게 세 번씩 300번 소통하는 걸 자신의 역할로 받아들였으며, 가정 밖을 몰랐던 여성 노동자는 노동 현장에 있는 다양한 우리들의 삶을 통합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이들 상당수는 사업장 단위 활동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조합운동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에도 손해를 가져온다. 어려운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사회적으로 유용한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는 숙련이 좁은 범위에서만 활용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사회 연결망을 형성할 기회와 다양한 분야 교육프로그램이 제공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리하여 자신이 속한 노동 현장 내 질서를 관리하는 걸 넘어서 더 넓은 범위에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이들을 통해 기후 위기, 저출생과 고령화, 불평등과 복지국가 등의 거시적인 사회문제의 해결 방향과 실천 방법 등에 대한 논의가 노동 현장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진다면, 나아가 이들이 다양한 이슈와 관련해서 지역 시민사회나 지방자치단체 정책과정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낸다면, 국가와 사회의 정의로운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미 다수 노동조합상급단체나 초기업단위노동조합이 이를 의식하고 교육활동에 힘쓰고 있는 걸 안다. 그러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노동자 참여는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대단치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 발전의 틀을 결정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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