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위해, 公無渡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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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위해, 公無渡河

박채은 546 01.09 09:00

[연구소의 창]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위해, 公無渡河



작성: 박채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윤석열 정부 들어 근로시간 개편에 관해 지속되었던 논의가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안에 힘입어 실제로 추진될 모양이다. 연장근로시간 관리의 단위를 주 단위에서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확대하는 것이 근로시간제도 개편의 골자이다. 


우리나라는 ‘주 40시간제’를 근로시간제도로 하고 있다. 여기에 한 주에 최대 12시간의 연장근로를 가능하게 하여, 주 40시간에 최대 12시간을 상한으로 연장 가능하다.​1) 따라서 현재 주 52시간을 최대 상한으로 하여 근로가 가능한 것이다. 이는 기존의 근로시간이 최대 68시간까지 해석되어 연장근로가 가능했던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방편으로 채택된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이 진정한 근로시간단축의 의미를 실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근로시간제도는 확정적으로 ‘주 40시간제'​2)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도 아쉬워졌다.


이번 권고안의 내용대로라면 앞으로는 ‘해석’이 아닌 ‘제도’로서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게 된다. 단순하게 계산을 해보면 이렇다. 주 40시간을 기본으로 하여 한 주에 최대 12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한 달 안에 사용 가능한 연장근로시간은 12*4.3(대략 한 달을 평균하면 4주~4.3주 정도 된다), 약 52시간이 나오게 된다. 여기서 연장근로시간 사용을 월 단위로 가능하게 한다면, 극단적으로 한 달 52시간의 연장시간을 한 주에 몰아넣을 수 있다. 근로기준법상 휴게규정, 그리고 권고안에 나오는 연속근무 시 근로일 사이의 11시간 휴게를 적용한다고 해도 집중적으로 일하고자 근로시간을 원하는 주에 몰아넣는다면 한 주에 5일 근무를 기준으로 최소 55시간 이상을 일할 수 있게 된다.  


권고안 중 근로시간 개선안의 핵심은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를 개선하여 노사가 자유롭게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근로의 효율성을 높이고, 더 나아가서는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에 기반한 근로시간 단축의 길을 모색”하고자 함이다. 


하지만 필자는 우려가 앞선다. 


우선 장시간 근로의 문제가 있다. 공기 단축 등을 이유로 근로시간을 집중적으로 몰아서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이미 제조업이나 IT 업계 등에서는 이러한 이유의 장시간 근로가 만연해있다. 필요할 때 근로시간을 늘려 집중적으로 일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업무의 효율을 떨어뜨리게 된다. 한 번에 몰아서 업무를 한다는 것은, 업무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이고 이는 신체적·정신적 과부하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특히나 장시간 근로는 야간근로를 통해 이뤄지는데, 대부분의 중대산업재해는 장시간 노동, 야간근로에 따른 과로에 기인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SPC 제빵공장 끼임 사망 재해도 야간근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는 건강한 노동을 주장하는 권고 내용에 위배 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근로시간 선택의 자율화는 오히려 타율적 근로시간 배치가 가능하게 될 염려가 있다. 사용자의 선택에 대한 재량권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노사 관계가 대등하지 못함에서 오는 문제이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 많다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근로시간 선택에 있어서 사용자의 결정에 무게추가 실릴 가능성을 보라는 이야기이다. 노사 간의 근로시간 합의에 있어 절차적·실질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상황에 대하여 고민해보아야 한다.


최종적으로 근로시간제도 개선의 목표는 근로시간의 유연화가 아니다. 근로시간의 단축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고안의 초점은 ‘유연화’에 맞추어져 있다. 이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적 진화과정에서 역행하는 것이다. 


‘자율’이라는 말은 능동적이며 주체적인 어감을 지니는 것처럼 보이나, 이면은 상당히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노동의 방식을 ‘자율적으로 선택’했다면, 이 자율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스스로의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성실과 근면의 정신이 체화되어 있는 우리나라 노동문화 내에서, 자율은 자발적 착취를 가져올 수 있는 ‘마법의 단어’이다.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였으니 그에 대한 결과인 성과는 최대치여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의 자유는 최대의 성과 창출을 위한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3)인 것이다. 노동시간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삶의 문제이다.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율, 유연, 공정이라는 아름다운 수사(修辭) 이면에 숨겨져 있는 함의를 발견해야 한다. 따라서, 강 저편의 ‘장밋빛 미래(未來)’를 향해 노를 젓고 싶다면 이 방식은 답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 강을 건너지 말기를 바란다.


1우리나라에 ‘주52시간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길더라도 ‘주40시간제에 최대 연장 상한 12시간’임을 명시하여 사용하는 것이 옳다.
2) 결국 주 40시간이지만 그래도 52시간까지는 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3) 한병철 저, 김태환 옮김, “피로사회”,문학과 지성사, 201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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