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코로나19 이후의 도서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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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코로나19 이후의 도서관 풍경

윤자호 559 08.08 09:00

[연구소의 창] 코로나19 이후의 도서관 풍경



작성: 윤자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같은 동네라도 사람에 따라서 인식하는 공간은 다를 것이다. 내가 인식하는 ‘우리 동네’는 주로 돈을 쓰는 곳이다. 퇴근길에 들러 뭐든 하나는 꼭 사고 마는 마트, 일주일에 두 번은 가려고 애쓰는 킥복싱 체육관, 조깅 겸 산책 코스인 동네 공원, 가장 가까운 시간 영화 예매하고 훌쩍 가는 프랜차이즈 극장, 종종 간단한 작업을 하거나 가족들이 마실 음료를 사러 가는 카페, 그리고 책을 빌리거나 쾌적한 공간에서 일하기 위해 노트북 들고 가는 도서관이다. 돈을 쓰라고 요구하지 않는 곳은 동네 공원과 도서관인데, 더위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실내공간은 도서관뿐이다. 이것만으로 도서관은 이미 소중하고 멋진 ‘공공의’ 공간이다. 


같은 도서관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인식하는 공간은 다를 것이다. 지역에 있는 공공도서관은 ‘우리 동네’만큼 풍부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책을 빌리거나 독서실 같은 열람실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들을 수 있으며, 온라인 자료와 같은 전자자료를 검색해서 볼 수 있다. 동아리 소모임을 하거나 미디어 창작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로비에서 원화 전시를 하고, 모월 모일에는 해당 작가 강연이 열린다. 어떤 도서관에서는 그 지역의 향토 문화 자료를 모아 작은 박물관을 마련하며, 또 어떤 도서관에서는 독서장애인‧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도서 자료실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특수도서를 만든다. 모든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멋진 공간들이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만들어가는 사서 노동자들에게 도서관은 어떤 공간일까? 현재대로라면 행복한 일터는 아니지 싶다. 공공도서관에서는 정규직 사서와 함께 계약 기간 11개월을 채우며 여러 도서관을 전전하는 기간제 사서, 주당 노동시간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사서가 있다. 비정규직 사서들은 정규직 사서들과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도 더 적은 임금을 받고,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공공도서관은 모든 시민을 위한 ‘공공’의 공간이건만, 그 만듦새는 평등하지 않은 것 같다. 


정규직 사서는 노동조건이 비정규직 사서와 비교했을 때 좋고 고용이 안정적이지만, 이용자로부터의 폭언이나 괴롭힘은 (응대 업무를 하는 한) 고용형태를 가리지 않는다. 공공도서관 사서 열 명 중 예닐곱 명은 업무 과정에서 폭언을 듣는다. 누구나 그 장소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노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용자 응대 업무를 하는 사서들은 성희롱이나 때로는 심각한 불안을 느낄 정도의 위협을 경험하기도 한다. 사서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화난 감정이 가장 앞서있는 민원 역시 일상적이다. 사서 노동자들의 업무 공간은 도서관뿐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도 걸쳐져 있다. 


마음이 불편한 대신 몸은 편할까. 마냥 그렇지 않다. 사서 노동자와 사서 지망생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손목 통증을 줄이기 위한 팁을 물어보는 게시글이 올라오고, 여러 댓글과 경험들이 달린다. 사서들은 무거운 책을 옮기거나 들기도 하고, 무릎을 굽히거나 허리를 숙이는 자세를 일상적으로 취한다. 


코로나19 시기 거리두기 시행으로 도서관 이용이 제한됐는데, 이 시기 사서들은 이용자가 예약한 책을 직접 도서관 밖으로 가지고 가서 이용자에게 건네거나 무료 택배 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택배 대출 서비스의 경우, 거리두기 완화 이후에도 계속된다. 새로 생긴 서비스들이 있는데, 거리두기 완화로 다시 이용자들이 도서관을 찾고 있다. 좋은 현상이지만, 사서 노동자들의 업무 부담은 이런 식으로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규모가 크지 않은 도서관의 경우, 사서 노동자들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적어 연차 휴가조차 원활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도서관과 사서 노동자의 역할이 확장되고, 도서관 공간이 풍요로워지는 동안 우리 사회는 정작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조건과 고충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불평등하고 착취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공공의’ 공간은 과연 멋진 곳인가. 멋질 수는 있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부실 공사한 건물처럼 언제든 금이 가고 무너질 수 있다. 어떤 공간이 탄탄하고 풍요롭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공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권익이 보장되어야 한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덜 착취적인 공간으로 변해가기를, 그러기 위한 여러 노력이 경주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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