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우리는 왜 투쟁을 멈출 수 없는가

노동사회

[책읽기] 우리는 왜 투쟁을 멈출 수 없는가

구도희 0 6,212 2017.07.05 02:18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실태 조사를 할 때 비정규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다.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이익과 해고가 두려워서”이고, 두 번째 답변은 “가입방법을 잘 몰라서”였다.
고용불안에 대한 상시적 두려움이 있는 비정규직에게 노조 가입은 ‘공포’다.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들면 계약해지로 해고하는 것이 모든 사용자들의 노조파괴 매뉴얼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이 ‘노조 가입’은 꿈도 꿀 수 없도록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해고위협 고문’을 하고 길들이기를 하는지 아사히글라스의 비정규직 남기웅 조합원의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내하청은 어딜 가나 똑같은가보다. LG 하청에서 일할 때도 아침 조회 때마다 협력업체 과장이 공장 사정이 안 좋아서 몇 명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내가 해고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으로 일을 시작하곤 했다. 아사히글라스 하청에 와서도 ‘해고한다’는 소문을 자주 듣는다. 몇 년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았다. 나아진 것은 없다.” 그럴 때마다 남기웅 조합원은 “나는 비정규직이다. 내가 못나서 이런 데서 일하는 거겠지. 또다시 나를 자책”하곤 했다고 적고 있다. 감기에 걸려 휴식이 필요한데도, 강제 잔업을 시킬 만큼 업무량이 많아도 ‘공장사정이 안 좋아서 몇 명 해고된다’는 말이 유령처럼 떠도는 공장 안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은 숨죽이며 기계처럼 일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해고 뒤 2년, 아사히 비정규직의 투쟁과 삶
『들꽃, 공단에 피다』는 아사히글라스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해고된 뒤 2년 동안의 투쟁과 삶을 담아낸 책이다. 2017년 5월29일 노조창립 2주년이 되는 날에 출판되었다. 
오수일 조합원이 전하는 책 소개는 이렇다. “공단에 핀 들꽃 같은 남자 스물 두 명의 투쟁이야기다. 힘들었던 생활을 함께 버텨 온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솔하게 직접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운 이야기를 담았다. 책을 팔아 생계기금을 마련하고 싶은 절실한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왜 ‘비정규직을 철폐하라’고 요구하고 투쟁하는지, 생계의 어려움 속에서도 왜 투쟁을 멈출 수 없는지, 우리가 왜 고공단식을 하게 되었는지 알리고 싶었다.”
나도 알고 싶었다. ‘비정규직 철폐하라’라고 쓰인 몸벽보를 입고 세종로 정부 청사 앞에서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매일 피켓시위, 선전전, 회의, 집회를 하면서 한 달, 두 달 그리고 2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리고 언제 공장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그 아득한 시간들을 어떻게 버텨내고 헤쳐 가는지? 지친 마음은 어떻게 다독이는지?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노조 설립 후 날아든 문자 해고통보
아사히글라스는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사장의 아들이 설립한 세계 4대 유리 제조업체로 다국적기업이다. 일본에 본사를 두고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 해외 생산거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구미공단에 공장을 설립하여 하드디스크용 글라스 기판을 생산하고 있다. 경상북도와 구미시가 50년간 토지무상임대, 5년간 국세전액감면, 15년간 지방세감면 특혜로 연간 600억 원 이상의 세제혜택을 제공하고 유치했다. 연평균 매출은 1조 원, 당기순이익은 500억 원, 사내유보금은 7,200억 원이다. 그런데 고용형태는 명백한 불법파견인 간접고용이다. 하청업체 (주)지티에스에서 170명, (주)건호에서 80명, (주)우영에서 50명 등 300여 명의 비정규직이 주4일은 3교대, 주3일은 2교대로 일하는 장시간노동 사업체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 노동자 170명은 노조를 만들자마자 한 달 만에 문자로 해고통보를 받고, 지금까지 부당해고 철회 투쟁 중이다. 
 
 
열악한 노동환경, 징벌용 조끼에 체벌까지 
아사히글라스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은 1시간 일하고 20분 쉬는 대신 점심시간은 따로 없었다. 회사 홈페이지의 복지제도 메뉴를 클릭하면 사내식당을 운영한다면서 ‘맛있게 편안하게 식사하라’고 쓰여 있지만, 하청업체의 비정규 노동자들은 식당이 아닌 휴게실에서 배달된 도시락을 먹었다. 2,500원짜리 도시락은 너무 형편없어서 반찬으로 뭐가 나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고, 김치와 단무지만 나올 때도 있어 라면을 끓여 밥을 말아먹어야 했다고 한다. 
최진식 조합원이 일하는 세정라인은 초 단위로 생산시간을 줄이기에 혈안이 되어 글라스를 생산라인에 투입하는 데 15초 걸리던 것을 해고되기 직전엔 13초로 단축했다고 한다. 회사는 해가 거듭될수록 생산시간을 단축했고 그 만큼 하루 목표량은 더 늘었다. 각 조가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사무실에서 ‘리드’를 불러 욕하고, 리드는 조장을 불러 욕하고, 조장은 조원에게 욕했다고 한다. 또한 9년을 일한 노동자도 최저임금을 받았고, 회사는 노동자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실수를 한 노동자에겐 징벌용 조끼를 길게는 한 달 이상 입혔다. 체벌을 하기도 해서 체벌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노동자도 있었다고 한다. 
 
 
노조 설립 후 “참 행복한 나날이었다”
2015년 5월28일 야간근무를 하기 위해 노동자가 모여 있는 휴게실에서 차헌호(현 지회장)가 “회사에서 쫓아내고 경비들이 막지만 저는 이렇게 현장에 들어왔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노조를 만들어서 인간답게 살아 봅시다”라고 말하면서 노조 가입원서를 돌리고 서명을 받았다. 138명이 노조에 가입했고, 다음 날인 29일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설립되었다. 
김정태 조합원은 노조 설립 후에 대해 “참 행복한 나날이었다”고 말한다. “물량을 맞추기 위해 서로 눈치 보는 일이 사라졌고, 쉬는 시간 1분만 늦어도 얼굴을 붉히던 모습들이 사라졌다.” 이영민 조합원도 “노조를 만들고 한 달은 참 괜찮았다. 감시하고 눈치를 주던 관리자들이 거꾸로 우리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 시키는 대로 일만 하던 우리가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파업가를 부르는 것을 놀라서 지켜보던 관리자들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난다”라고 말한다.
 
 
“꿈도 희망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 것이 된다”
2015년 6월30일, 입사 후 처음으로 전체 휴무가 공지됐다. 노조를 만든 지 꼭 한 달이기도 한 날, 조합원들의 휴대폰에는 하청업체 지티에스에서 보낸 문자가 도착했다. ‘아사히글라스로부터 도급계약 해지통보를 받았습니다.’ 해고 통보였다.  
김성한 조합원이 담담하게 풀어내는 천막농성장 강제 철거 저지 투쟁 이야기는 해고노동자에게 ‘농성천막’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해준다. “내리는 빗속에서 다섯 시간을 버텼지만 천막은 철거됐다. 종섭이 형과 나를 포함해 병원으로 실려 간 사람은 네 명이었다. 지회장과 다른 네 명은 공무집행방해로 연행됐다. …문자 한 통으로 해고당한 것도 억울한데, 밑바닥까지 떨어진 노동자가 살아보겠다며 친 천막을 무지막지하게 철거하다니! 우리가 밧줄로 묶고 저항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건데 말이다.” 
이민우 조합원은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농성장은 호텔 같다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면서 “농성장을 짓고 생활할 때는 그저 공간이었지만 그 허름한 농성장이 우리 투쟁의 꿈이고 희망이었음이 새삼 느껴졌다. 꿈도 희망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 것이 된다”고 말한다. 
이영민 조합원의 노래패 활동, 장명주 조합원의 몸짓활동, 민동기 조합원의 일본 원정투쟁기는 노동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지 읽는 사람의 마음도 훈훈해진다. 
“투쟁하면서 참 많은 동지들로부터, 단체들로부터 연대를 받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몸짓이라면 공연으로 보답하고 싶고 연대하고 싶다. 우리의 몸짓공연으로 투쟁하는 동지들이 힘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우리도 몸짓공연하면서 힘을 받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다른 투쟁사업장에서 농성장을 짓거나 보수할 일이 있을 때 아사히에서 와 줬으면 좋겠다는 연락도 해 온다. 은근히 신경도 쓰이고 품도 드는 일이지만 기쁘게 달려가 연대하는 것도 보람이다.”
“지난 연말에는 큰 걸개에 아사히 동지들의 응원을 담아 한국지엠 창원비정규직지회에 보냈는데 3일 뒤에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어 뿌듯했다. 현수막을 직접 손으로 쓸 때 성의도 더 담을 수 있고, 받는 동지들도 각별한 마음이 되는 것 같다.”
 
 
희망이 이루어질 날을 꿈꾸다
마지막으로 조리담당 짬장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한다. 
“나는 해고투쟁하면서 주로 하는 일이 메뉴 고민하고 주방 지키고 세일 문자 들여다보고 마트 가는 게 되었다. 연대동지들은 나더러 ‘아사히 엄마’라고도 하고, 나도 가끔은 그런 기분이 든다. 솔직히 가끔은 하기 싫을 때도 있다. 여름에는 더운 날씨에 불 앞에 있다 보니 땀띠 범벅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주방 휴지기를 갖기도 했다. 그래도 힘들게 투쟁하는 조합원들이 먹고 힘낼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동안 만든 음식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닭개장, 닭발 정도는 내가 생각해도 괜찮았다. 닭개장은 아내에게 물어서 만들었다. … 상경 투쟁할 때 길거리에서 ‘밥통’이 해준 밥을 몇 번 먹었는데 내가 안 하니 꿀맛이었다.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다’는 주부의 마음을 투쟁하면서 실감하고 있다. … 아사히 자본은 우리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기만 바라겠지만 힘차게 이겨내서 우리의 희망이 이루어질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 믿음으로 연대동지들과 우리 조합원들을 위해 나는 오늘도 칼질을 한다.”
짬장은 농성장 인기메뉴 ‘베스트 3’로 닭발 10인분, 야채찜닭 10인분, 닭개장 50인분에 대한 레시피도 살뜰하게 정리해 놓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95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