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2016년 말의 촛불시민혁명을 계기로 실시된 조기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첫 국정전략인 ‘국민주권의 촛불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철저하고 완전한 적폐 청산’의 일환으로 고용노동행정 분야에 오랫동안 쌓인 폐단을 찾아 개혁하려는 취지에서 설립되어 9개월 활동하였다.”
이 글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활동결과보고서』 발간사 중에 일부다. 과연 위원회가 국정전략으로서 “철저하고 완전한 적폐청산”에 기여했는지는 앞으로 평가에 맡길 일이다. 다만 필자는 고용노동행정분야의 폐단을 찾아 개혁한다는 취지에 공감하여 위원직을 수락하게 되었고, 9개월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고군분투하였다.
필자가 맡은 조사과제는 15대 과제(추가 3개)중 △5번 ‘근로감독 및 체불행정의 실태와 개선’(주심) △6번 ‘불법파견 수사 및 근로감독 실태와 개선’(부심) △7번 ‘행정관청의 단결권 제한 실태와 개선’(부심) △8번 ‘노조 무력화 및 부당 개입 관련 실태와 개선’(부심) △9번 ‘노동위원회 운영 실태와 개선’(부심) 등 5개였다. 이중 조사와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것은 5번부터 8번까지 4개 과제이고, 9번 과제는 주심 위원과 함께 조사에만 참여하였다.
과제 분장과 관련하여 아쉬운 것은 15개 과제가 크게 ‘제도개선 과제’와 ‘과거사 진상조사 과제’로 나눌 수 있고, 사안의 중요성이나 조사 분량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과제를 분장할 때 이 같은 점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진상조사 과제는 제도개선 과제에 비해 조사업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노조 무력화 과제’는 조사대상 사업장 수가 11개였으나 1개 과제로 되어 있다 보니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2. 근로감독 및 체불행정
필자는 2002년 이후 줄곧 노무사업에 종사했고 개업 초기에 임금체불 사건을 많이 다루어 보았으므로 체불행정이나 근로감독에 약간의 경험과 이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 경험만으로 필자 혼자서 짧은 기간에 거대한 노동행정조직의 실태를 조사하고 제도개선방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이 과제를 담당한 시점 전후로 몇 가지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첫째는 2017월 2월 22일 민주당 정책위원회와 강병원 국회의원실 주관으로 <체불임금해소방안 마련 토론회>의 발제를 맡게 되면서 체불행정의 실태와 개선방안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었고, 그 후 2017년 3월경 필자가 속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이슈페이퍼로 「임금체불 해소와 권리구제를 위한 정책과제」를 집필하면서 좀 더 생각을 다듬을 수 있었다.
둘째는 2017년 11월경 고용노동부가 발주한 『근로감독행정 혁신방안 연구』 과제에 여러 연구자들과 참여한 경험이다. 이 과제는 감독행정 혁신방안 도출을 목표로 조직구조, 채용·교육·경력관리, 법령 및 규정, 업무처리절차, 사후조치 및 처리결과 공정성 등 각 분야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도출하였고, 당시 연구진들과 공동연구의 경험이 위원회 과제수행에 도움이 되었다. 특히 필자는 연구과제 중 ‘업무처리절차 개선’ 분야를 맡았는데, 현장 근로감독관들이 참여한 업무재설계(BPR) 워크숍과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서 감독행정과 감독관의 업무환경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셋째, 그동안의 조사가 마무리된 시점에 고용노동부 본부의 담당자(과장, 국장)들과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치며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고, 본부 차원에서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대안을 청취할 수 있었다. 그 후 위원회 내부 분과회의(위원장, 주심, 부심, 전문위원)에서 보고서 내용에 대한 구체적 검토를 진행한 후, 전체회의에서 심의·의결하였다.
보고서의 구성을 보면 크게 사업장 근로감독, 임금체불 신고사건처리, 근로감독 행정과 인프라로 나누어진다. 우선 사업장 근로감독에서는 불시감독의 원칙 정립, 예방감독 강화, 특고종사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근로감독 포함, 근로감독의 투명성과 공정성 제고 등을 권고하였다. 체불신고사건 처리와 관련하여 체불 사용자에 대한 제재 강화, 업무효율화를 위한 제도개편, 신속하고 공정한 권리구제 등을 권고하였다. 그동안 지속적인 신고사건의 증가와 사업장 감독 건수의 감소 등 거꾸로 가는 노동행정을 혁신하여 신고사건 감소와 예방감독 강화의 선순환 구조로 바꾸려면 체불사건 발생 자체를 줄여야 하고 이를 위해 체불 사용자에 대한 제재강화와 예방감독 강화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또 체불로 피해를 당한 근로자에 대하여 신속하고 공정하게 권리구제가 이루어지도록 권고하였다. 아울러 대국민서비스가 개선되려면 체불행정을 담당하는 근로감독관이 충분하여야 하고 채용제도와 교육을 통해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가질 필요가 있으므로, 인사제도 개선, 교육훈련 강화, 조사환경 개선 등을 권고하였다.
근로감독 및 체불행정 개선과제와 관련하여 아쉬운 것은 첫째,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체불로 고통을 받거나 잘못된 감독행정으로 피해를 입은 근로자들을 만나보고 담당 공무원들을 만나서 조사할 필요가 있었으나 그러지 못하였다. 물론 현실적 한계와 어려움이 컸으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친 것은 마음에 부담으로 남아 있다. 둘째, 근로감독 분야가 넓지만 조사범위를 ‘체불행정’에 한정한 점이다. 근로감독 분야에 과제를 추가하여 체불행정 외에 ‘직장갑질’ 등 최근의 요구를 반영하고, 특고 등 비전형·취약 노동자 보호를 위한 감독행정 관련 문제를 조사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직장갑질의 경우 해당 단체 운영진과 활동가를 만나 수차례 의견청취를 하였으나 별도 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하였다. 현실적 한계 때문이지만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3. 과거사 진상조사
필자가 부심으로 참여한 과제는 대부분 과거사 진상조사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 중에 불법파견 수사 및 근로감독 실태는 조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고 사안의 중요성이 크다고 판단하였다. 이밖에 단결권 제한 실태와 개선에서도 조사가 이루어졌고, 노조 무력화 및 부당개입 실태 과제에서도 중요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1) 불법파견 사건 진상조사
우선 불법파견 수사 과제와 관련하여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의 근로감독 적정성 조사’는 조사 규모면에서 위원회 과제 중 단연 으뜸이었다. 조사팀(위원, 전문위원)이 요구하는 자료와 고용노동부가 제출하는 자료의 양이 방대했을 뿐 아니라, 조사가 이루어진 전·현직 공무원들도 19명, 32회에 달하였다. 조사대상은 본부 과장급 이상이거나 지방청장 또는 지방청 감독과장 등 고위공무원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조사과정에서도 사실관계를 부인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아서 조사팀이 매우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난다. 이 과제는 조사결과가 정리되어 보고되는 시점부터 위원회 내부에 많은 논쟁을 불어왔고, 특히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자료를 원본 그대로 국민에게 공개할 것인가를 두고도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최종보고서에서는 부록 형태로 중요한 자료 일부가 공개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과제 중 행정상 문제점과 권고안 일부를 집필했는데, 필자가 주안점을 둔 것은 근로감독관의 업무상 독립성에 관한 것이었다.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사건의 핵심 쟁점은 근로감독관 아닌 고위 공무원 또는 정무직 공무원이 개별 사업장 근로감독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개입함으로써 수시감독 결과를 당초 ‘불법파견’에서 ‘합법도급’으로 변경한 것이 불법에 해당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를 감독행정의 관점에서 보면, 불법적인 상부의 지시를 근로감독관이 거부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였는데 당시 상부의 부당한 지시와 억울한 심경을 외부에 발설한 혐의로 근로감독관 한 명이 징계를 받은 사안을 보더라도 당시 고용노동부가 얼마나 경직적이고 위압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필자는 근로감독에 대한 업무상 독립성을 보장하고, 본부의 권한범위를 명확히 하며, 이해관계 의견청취의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권고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고위 공무원과 현장에서는 근로감독관의 전횡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도 많은데 이들에게 업무상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감독관의 ‘업무상 독립성’은 필자의 독자적 주장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등 법령에 근거한 것이고, 개별 감독관의 전횡은 내부감사나 권고사항에 포함된 이의신청 제도를 통해 충분히 견제할 수 있는 반면 고위직 공무원의 불법적 개입은 상대적으로 밝히기 어렵고 통제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불법파견 과제 중 이마트 불법파견 근로감독 적정성 조사는 필자가 주심을 맡았는데, 2013년 이마트 특별감독에서 고용노동부는 1,462명에 대한 직접 고용을 지시한 바 있었다. 따라서 2013년 특별감독에 대해서는 일부 간접고용 노동자들(납품업체 협력사원 등)의 존재를 확인하고도 이를 조사하지 아니한 점을 지적하였다. 문제는 2016년 근로감독 청원 건이었는데, 당시 청원 건에 대해 이를 접수한 지방관서는 청원법과 내부지침을 위반하여 부당하게 처리한 점이 발견되었다. 본래 청원이 접수된 경우 청원법 제5조가 정하는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원칙적으로 청원을 수리하여야 함에도 해당 관서는 청원수리(근로감독 포함)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채, 마치 근로감독을 진행하는 것처럼 근로감독관 1인이 고용관계에 대한 구체적 실태조사를 진행한 점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에 필자는 근로감독청원제 시행지침을 개정하여 청원법 취지에 따라 담당 공무원의 업무범위, 조사대상, 조사방법 등을 명확히 하고 본 건 청원에 대해서는 청원심사위원회에서 이를 재심사하도록 권고하였다.
2) 노조 무력화 사건 진상조사
다음으로 노조 무력화 과제는 11개 사업장 및 창조컨설팅과 부당노동행위제도운영 등에 대한 조사로 이루어졌다. 이 중 필자는 ‘갑을오토텍’과 ‘이마트’의 노조 무력화 의혹에 대한 조사를 담당하였다. 첫째, ‘갑을오토텍’은 2014년부터 노무법인 등을 통해 노조 파괴 전략을 구상하고 신규 채용자를 중심으로 노조 파괴 시스템을 가동하여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폭행하였다. 고용노동부는 2015년 4월 회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그 결과 회사 대표이사 등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조사결과 고용노동부의 미온적 대응,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휴대폰 분석기록이 누락(폐기), 노무법인에 대한 관대한 조치 등이 확인되었고 이를 문제점으로 지적하였다.
둘째 ‘이마트’의 경우 2013년 내부 고발자에 의해 공개된 자료에서 조합간부 등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이 확인되었고, 고용노동부는 같은 해 1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경영진과 관련자들을 조사하고 17명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신세계그룹의 경영진은 무혐의 처분하고(고용노동부도 같은 의견으로 송치함), 불구속기소 5명에 그쳤으며 그 후 법원에서 이마트 대표이사와 담당 임원에 대해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형에 처해지는 데 그쳤다. 이마트 노조 측은 이처럼 관대한 처벌로 인해 현재까지도 사업장 내 부당노동행위가 그치지 않는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고소·고발사건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조사결과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은 부당노동행위 계획에 해당하는 ‘취업규칙 개정 가이드’를 계열사들에게 제시하였고, 이마트는 동 취업규칙 개정 가이드에 따라 취업규칙을 개정하고 이를 이용하여 노조간부를 해고하는 등 노조 무력화에 활용한 사실이 있으나 고용노동부가 적절하게 조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3년 수사에서 고용노동부는 위 혐의에 대해 모두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한 것이다. 또 당시 근로감독에서 고용노동부는 취업규칙 불법개정 부분의 시정을 이마트 측에 명령하였는데, 그 후 이마트가 시정지시를 이행한 결과자료를 제출했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고용노동부가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아니하여(남아 있지 않다고 하여) 이행 여부를 조사과정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노조 무력화와 관련한 권고사항에서는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위해 법정형을 상향 조정하고, 노무사·변호사 등에 의한 부당노동행위 개입에 대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강구하도록 하였고, 특히 하청회사 또는 계열사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에 개입이 드러난 원청 또는 그룹에 대해 강제수사를 원칙으로 하도록 하였다.
이밖에도 단결권 제한실태, 노동위원회 운영실태 등과 관련한 조사도 이루어졌지만 지면의 한계로 줄이기로 한다.
4. 나가며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보고서를 오랜만에 다시 보면서, 여러 위원들의 노고를 새삼 되새기고, 함께 일한 전문위원과 위원들, 조사에 응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조사와 좋은 권고가 이루어졌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이를 활용하지 않거나, 정부가 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할 의지가 없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할 것이다. 아무쪼록 어렵게 만들어진 보고서가 조금이라도 노동행정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